2013/03/08 15:10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는 존재에 대하여 씨네마

 시간은 늘 연속적으로 흘러간다고 가정했을때, 고개를 돌려 지나온 시간의 여정을 세월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어쩌면 불가능 할 일에 가깝다. 사람들은 매 순간 실수하고, 그 다짐들 또한 망각과 실수의 연장선상에서 끊임없이 변하고 뒤틀린다. 과거의 경험이 앞으로의 명확한 지침을 내려주고 오차의 여지를 줄여준다고 확신한다고 생각할때야 비로소 사람은 오만까지 덧붙혀진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구성과 장면, 다양한 복선과 미장센들을 일일이 해석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절대적으로 명확하게 해석될 수 없는 은유와 상징들이 영화 전반에 골고루 배치되어 있고, 그 요소들이 결국엔 하나로 수렴되어 관객 개개인으로 하여금 커다란 울림을 주는 영화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 구석에서 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고, 같은 길을 똑같이 걸을 때 마저도 넘어지는 그런 익숙함 속에서 개인만이 느끼는 처연함에 대한 영화인 것이다.

 일생에서 느끼는 부조리에 대한 실존적인 성찰로 하여금,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남루한 행태들을 빗껴가고 거부하려고 노력하는 해원(정은채)의 모습은 어머니와 마주하는 일상에서 드러난다. 현실에서 감도는 권태와 모순들을 피해 외국으로 가서 새출발 하려는 엄마(김자옥)와의 대화에서 해원은 “돈 버는거 별거 아니에요. 하루 이틀이면 돈은 벌어요.”라고 이야기 한다. 일생에서 주어진 유일한 결과인 죽음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실제를 한발짝 앞으로 전진시키고서야 해원은 일생의 순간들이 하루씩 영위해하는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때문에 해원은 자신과의 연애를 직업적인 문제 때문에 지나치게 숨기려는 모습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위선으로 뒤틀린 관계 속에서 개개인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한채 통상적인 편견으로 바라보는 학생들과, 또 그것에 너무 예민하게 대처하는 성준(이선균)의 모습에 지쳐, 술집에서 소리치며 나올 수 밖에 없다. 오늘 너무 외로웠다. 그리고 이게 진실이다.

현실이 권태로운 위선으로 가득차 있기에, 그 속에서 배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인 이상과 동경이라는 차원이 더욱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타지에서, 그것도 이 부조리의 세상에서 고뇌하는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나보다 나은 사람. 다른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어떻게 보면 어색하지 않은 일인 것이다. 때문에 중원(김의성)이 해원에게 말하는, 용기있게 자신을 계속 부딪치면서 발견할 수 있는 존재 자체에 대한 성찰들이 해원에게는 ‘함께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급작스런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또한 외국에서 교수로써, 동경할 여지가 있는 것 또한 어쩌면 해원이 중원을 사랑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제인버킨이 그녀에게 딸과 닮았다는 모습에 소르라치게 좋아하는 해원의 모습, 정말로 제인버킨의 딸을 사랑한다는 그녀의 말은 진심이다.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그 자신이 감추고 싶은 부분까지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해원은 기대고 싶었던 것이다. 이 단조로운 일상 깊은 곳에서 불편하게 이끌려 서로를 숨기고 위선적인 행동을 반복할 수 밖에 사람들에게, 무엇이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말을 한들, 소용 있을까. 결국 낮은 안개만 자욱하고, 참을 수 없기에 원하는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세상이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해원은 멋있었다.-ozwon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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